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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전원근 상임감사,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 어제와 오늘
김태정 기자 | 승인 2019.08.21 15:59
   

▲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전원근 상임감사.

연합경제TV - 지난 달 23일 죤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방한했다.

7월 초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싸우는 우리로서는 패배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볼턴의 등장은 구원병 같아서 더 더욱 반갑고 고마웠다. 왜냐하면 우리를 대변해 주거나 아니면 한·일간의 중재를 은근히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느닷없이 엄청난 방위비 분담금 말만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 

또한 8월 7일 방한 한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역시 한·일군사보호협정(GSOMIA)을 계속 유지할 것과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의 사실상 파병요청을 한 것뿐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8월 7일 트윗을 통해 ‘한국을 82년 동안 도왔지만 한국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며 ‘매우 불공평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한국이 훨씬 돈을 많이 내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82년 동안을 역산하면 1937년부터 한국을 도왔다는 셈인데 당시 국내는 일제의 식민지 상태에서 숨 죽이며 지냈고, 해외 임시정부는 중·일전쟁(1937) 중이라 정처없이 중국 각처를 옮겨 다녀야 하는 수난을 겪을 때이다. 미국이 어디를 후원했다는 말인가?

미국과 우리와의 만남은 미국의 갑질로부터 시작된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1866년 평양 대동강에 나타난 미국 상선(商船) 제너럴샤먼호는 무리하게 통상요구를 하였다. 그러나 이를 거절한다는 이유로 행패를 부렸고 이 때문에 성난 군중들에 의해 제너럴샤먼호가 전소(全燒)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국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전함 5척과 해병을 포함한 650명을 동원하여 강화도를 무차별 공격함으로써 조선군은 350여 명이 죽거나 다쳤고 미군은 13여명이 피해를 보았다. 이를 신미양요(辛未洋擾;1871.6.1.)라 배웠다.  

이후 1905년 일본이 조선침략을 미국이 묵인하는 “테프트와 까츠라 조약”으로  우리는 36년 동안 식민지 지배와 이후 지금까지 진정한 반성 없이 한국을 깔보며 속국 취급하려하는 것은 테프트를 믿고 까부는 꼭두각시 까쓰라의 망령이 아베(安倍晋三)를 움직이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에서 미·영·중·소 4개국이 계획했던 일본 분할점령을 무시하고 오히려 한국의 분할 점령을 주도한 것은 누구인가?

1945년 해방은 되었으나 한반도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미·소 신탁통치 반대를 외치던 백범 김구선생을 1949년 6월 경고장 2층에서 권총으로 쏜 사람은 주한미군 방첩대 소속(CIC)의 육군 소위 안두희였다.

시카고 대학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의 저서[한국전쟁의 기원;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에서 전쟁의 기원은 그 해 1월 12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뜬금없이 “애치슨 라인 선언”(Acheson line declaration)을 하면서 발생되었다는 “전쟁 유도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국군과 유엔군이 압록강 초산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이 개입을 저지하기 위해 만주폭격을 주장하는 그를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상식도 무시한 채 1951년 4월 11일 전격 해임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에 대한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남북 분단의 현상을 고착화하려는 미국의 의도를 간파한 이승만은 1953년 6월 18일 남한 각지에 수용되어 있던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함으로써 1953년 10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받아냈다.

1997년부터 동남아시아에 불어 닥친 통화위기의 나비효과로 한국은 “IMF외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인한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일본은 단기부채 연장을 거절하면서 상환을 독촉 받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정부와 기업은 물론 국민 모두가 고난의 대 환란을 겪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의 주력품목인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으로 재미 좀 볼라치면 미국은 1974년 제정된 통상무역법 301조, 1988년 입법된 종합대외무역경쟁법을 발동하여 곤욕을 치르곤 했다.

개성공단은 남측이 자본과 기술을 제공하고 북측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여 인류 역사상  유래를 찾기 힘든 남북한 통합의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본래 개성지역은 한국전쟁 시 남침의 주접근로였다. 휴전이후에도 북한의 막강한 화력과 최신 장비로 무장한 2군단 예하 2개 사단이 포진한 군사 전략요충지역이었다. 그러던 곳을 남측의 요구와 북측의 양보로 개성지역에 주둔한 군사력을 20km 후방으로 후퇴시키고 건설한 한반도 미래의 작은 평화동네였다. 북측 노동자 월 임금 6만원으로 핵무기 제조에 제공되었다는 확실한 물증이 부족함에도 개성공단은 달러박스라는 이유를 들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의 진전이 있어야 한다면서 개성공단의 재가동을 현재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1987년 미·소가 맺은 INF(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을 미국이 파기하면서 중국과 러시아에 배치된 많은 중거리 핵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중단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우리는 몇 해 전 미국의 요구로 사드(THAAD)를 배치하고 중국과 갈등으로 상상외로 많은 경제적 피해를 본 바가 있다. 그 때 미국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일본의 안보를 위한 들러리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 속담에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국가 간에 영원한 것은 없다. 다만 영원한 것이 있다면 국가 이익뿐이다.”라는 영국 수상 펄머스틴의 말을 새삼 떠 올리게 하는 시간이다.

지소미아(GSOMIA)의 계속 유지를 요구하는 미국은 우리의 경제안보는 고사하고 우리의 입장과 체면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일본 안보를 위한 미국의 정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금번 경제전쟁은 일본이 먼저 싸움을 걸었다. 포괄적 안보개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전쟁에 패하면 1637년 “삼전도의 굴욕” 그 이상의 불가역적 후회를 할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만 GSOMIA 유지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본에게 먼저 과거사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 그리고 먼저 결자해지(結者ㅈ解之)를 요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일본에 요구해야 할 것이다.

김태정 기자  yonhap-t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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